야생 오소리, 여우, 고슴도치를 하룻저녁에 전부 다 만난 운이 좋았던 밤 (1)
지난달 초, 조시랑 근방에 있는 산림길을 걸었다. 조시가 이곳에 여우, 사슴뿐 아니라 오소리(badger)도 산다고 하면서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해 질 녘에 다시 와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일단 이날은 집터나 배설물 등 오소리의 흔적을 찾는 것에 집중하면서 걸었다. 다음에 다시 올 때 어디에서 대기해야 최대한 높은 확률로 오소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 추측하기 위해서였다.
오소리를 추적할 때 좋은 단서 중 하나가 위에 찍어둔 사진처럼 반원호 모양으로 된 땅굴(sett) + 입구로 이어지는 선명한 흙길 (가운데는 파이고 양옆으로 흙이 쌓인 얕은 U자 모양)이라고 한다. 오소리가 몸집은 꽤 크지만, 다리가 짧다 보니 같은 길을 자주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그 패턴이 보이는 거다. 마당 쓰는 것처럼 들려서 귀여웠다…. ㅎㅎㅎ
조시가 우리가 사진으로 남긴 이 집(sett)은 현재도 오소리가 100% 거주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최고의 예라고 했다. 그 이유가 위의 힌트에 더해 입구에 거미줄이 쳐져 있지도 않고 깔끔하게 유지되어 있는 것, 트랙 바로 옆에 오소리 발자국도 찍혀 있는 것 (사진에 노란색 동그라미 표시), 근처에 별도로 만들어진 화장실/뒷간에 매우 최근 걸로 보이는 배설물*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오소리가 참 단정하구나 싶었던 게 집 밖에 별도로 화장실을 만들어서 거기에 볼 일을 본다고 한다! 사진은 한곳만 찍었지만, 이 일대에 오소리들이 화장실로 쓰는 구덩이(pit) 여러 개가 만들어져 있었고, 배설물들이 다 이 구덩이 속에 있었다. 무튼, 마르지 않은 배설물들이 가득 있었던 걸 토대로 조만간 다시 올 땐 여기로 와야겠다고 200% 확신할 수 있었다.
어디로 와야 할지 정했으니, 이제는 관찰을 끝내고 밖으로 나갈 경로를 알아보기로 했다. 들어갈 땐 시야 확보가 되어도 나갈 때쯤이면 해도 지고 근처에 불빛도 없어 완전 깜깜할 테니, 최대한 나가기 쉬운 곳을 찾아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야생 오소리 관찰 일정에서 제일 꺼려졌다. 무서워서ㅠㅠ)
비교적 편평하고 깔끔한 곳을 따라갔는데, 위 사진에서처럼 이렇게 길이 난 흔적이 여럿 있었다. 이거 역시 오소리가 만든 길이라구 한다. 한낮이라 흔적만 볼 수 있지만 인간에겐 상상력의 힘이 있지 않은가! ‘밤이 되면 각자 집에서 나와 부산하게 이 길들을 따라 움직이는 오소리들’을 상상하니 재밌고 귀여웠다. 오소리들의 도시 한복판을 걸어 다니는 기분 나는 이 구역을 Badger City로 부르기로 했다.
조시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으로 돌아온 뒤 일기 예보를 확인했고 본격 오소리 관찰 d-day 날짜를 잡았다. 15일 저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