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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제비 보러 어청도까지 다녀온, 군산 어청도 여행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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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아주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여행지를 고르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어청도 여행의 시작이 그랬다.

어청도 여행: 섬 이름이 적힌 간판 포토 스폿 - Sehee in the World

어느 날 온라인 검색으로 기깔나게 정보를 찾은 조시가 ‘주말에 족제비 보러 다녀오지 않겠냐’라고 했다. 내가 “오 그게 어디야?”라고 하니 ‘어청도’란다. “오 그게 어디야?” 똑같은 질문을 한 번 더 해야 했다. 어청도는 군산에서 3시간 가까이 배 타고 나가면 있는, 전라북도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이었다.

숙소는 알아보고 가려고 한국어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됐는데, 이 섬은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인기 여행지인 것 같았다. (우리가 있는 동안에도 대부분은 낚시하러 온 사람들로 보였다.) 그 외에 등대 스탬프 투어와 조류탐방(bird watching)으로 알려진 섬이었다.

서울 출발 군산행 고속버스 좌석도 tv 화면 - Sehee in the World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탔는데 (도깨비 사진 찍으려고 주문진 다녀온 이후로 처음일 수도…) 신기술의 적용에 경이로움을 감추지 못했다. 티켓을 바코드에 찍으면 TV화면에 실시간으로 좌석 배치도가 업데이트된다니!

우리가 탄 버스가 열심히 달리고 달려 군산에 도착했고, 혹시 몰라 약국에 들러서 뱃멀미 예방 약을 샀다. 배 출발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 군산 여객 터미널에 당도했다. 또 한참을 물 위를 달려 드디어 어청도에 내렸다.

민박에 짐을 풀고 바로 나와서 섬을 구경할 겸 족제비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다. 아마도 족제비가 남겼을 수도 있는 것들을 몇 개 찾았는데 정답인진 모르겠다. 이외에는 낮에 족제비를 마주치긴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 질 녘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 준 것도 아니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약간의 실망감을 뒤로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섬의 루틴을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식당이 여럿 있었는데 가는 곳마다 서빙 거절을 당해서 저녁을 굶을 뻔했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정말 다행히도 우리가 묵은 식당 & 민박집 사장님께서 우리를 딱하게 여기시어… 식사를 팔아주셨다. 8시 전이었는데 왜 식당들이 손님을 더 이상 못 받는다고 했는지 정확한 사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곳과 육지의 배꼽시계에 시차가 있거나, 낚시 그룹 손님들의 스케줄과 연관이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뿐. 여차저차 끼니는 해결했다.

군산 어청도 쓰레기 수거함 - Sehee in the World

마을을 돌면서 신기했던 건 주민 분들이 쓰레기를 모아두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철망으로 된 공간이 민가 곳곳에 있었는데, 가정용 쓰레기를 이곳에 모아두면 정기적으로 수거되는 건가 싶었다. 이런 것도 족제비들에게 호재일 수 있을까 궁금했다. 혹시라도 사냥에 실패하면 음쓰를 노리지 않을까 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 족제비를 찾기 위해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For our one last chance! 다른 투숙객들의 코골이 서라운드 시스템이 화려하게 깔렸던 밤이었지만, 우리도 서울서 긴 여정 끝에 도착했으니 나름대로 잠은 들었다.

어청도에서 묵기 전까지는 새벽에 기상나팔 부는 수탉의 울음소리를 언제 마지막으로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아니, 심지어 실제로 들어본 적이 있긴 했었나? 우리 일정에서 새벽 탐험 기회는 한 번 뿐이었기에 부지런히 일어났다. 꼬끼옭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깔고 준비를 마친 뒤 신흥상회 뒤쪽 전망대로 올라갔다. (아래 등장할 신흥상회 아저씨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선택한 장소였다).

군산 어청도 일출 - Sehee in the World

조시가 조금 더 위로 올라가 (아마 헬기장이 었었던 곳) 동태를 살피는 동안, 나는 중간 지점에 서서 아름다운 일출과 정겨운 닭울음을 즐기고 있었다.

군산 어청도 여행 - 대나무 수풀 - Sehee in the World

나중에 우리의 어청도 여행을 소리로도 떠올리고 싶어서 핸드폰 녹음기 기능을 켜고 꼬끼옭을 녹음하는 중이었다. 수탉 외엔 아주 잔잔했던 새벽 풍경의 침묵을 깨고 갑자기 내 뒤쪽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내 움직임이 녹음되지 않기 위해 일단 녹음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바로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소리의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조시는 아니었다. 여전히 전망대 길 정상에 있었으니까… 혹시나 나를 대나무 수풀 속에서 쳐다보면서 안 들키고 움직일 틈을 노리던 족제비였을까? 내 생각이지만 꽤 그럴듯한 추측이다.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진 이런 추측 놀이가 많다….

조시가 내가 있던 곳으로 내려왔을 때 녹음한 것을 들려주고 왠지 족제비였던 것 같다 했다. 조시가 있던 곳엔 족제비가 안 보였다고 보고해줬다. 일단은 어청도 내에서 다른 곳들도 구경해보자 하고 긴 산책을 했다. 그사이에 어디서든지 간에 족제비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무소식. 아… 역시 1박으로 족제비를 보는 건 너무 큰 운을 바라는 것이었을까. 그렇게 95% 정도 포기하고 산길에서 다시 내려와 숙소 쪽으로 걸었다.

어? 족제비다!!

섬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던 와중에 멀리서 노란색의 유연한 움직임이 보였다. 조용히 최대한 빠르게 달렸다. 그사이 족제비는 당연히 골목 어딘가로 숨었다. 처음 눈에 띄었던 주변을 둘이서 방향을 나눠서 보기로 했다. 내가 순찰하던 쪽에 족제비가 다시 나타났다. ‘조시 카메라가 필요한데, 조시 불러야 하는데 크게 소리를 낼 수도 없고 답답하네ㅠㅠㅠㅠ’ 아쉬운 대로 일단 핸드폰 카메라 줌을 엄청 당겼다. 정말 생김새만 보면 포식자 느낌이 안 나는데,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사냥 습성이 있다는 거지…? 조시가 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족제비가 간 방향을 가리켜줬다. 조시가 돌담 너머로 내 핸드폰 사진보다 훨씬 더 나은 족제비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아쉬움 가득할 뻔했던 어청도 족제비 관찰 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 ? 오전 배와 오후 배 중 어떤 것을 택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아주 극적으로 아침에 이 족제비를 봐서 미련 없이 오전 배를 타고 나가기로 했다.

군산 어청도 여행 - 신흥상회 건물 - Sehee in the World

앞서 잠깐 언급한 신흥상회는 내가 느끼기에 섬에서 보물창고 같았다. 이곳에서 군산으로 돌아가는 배표도 팔고, 간식/간편식 등을 살 수 있는 건 당연하며 이외에 브라우니, 피자도 아주머니께서 종종 직접 구우신단다. 도착한 날과 다음 날 아침에 주인아저씨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낚시 이외의 목적으로 어청도 가려는 사람들 중 숙소 잡기가 고민이라면 신흥상회 게스트 하우스도 괜찮겠다 싶었다. 우리가 네이버에서 ‘어청도 숙박’이라고 검색할 땐 숙소 결과에 안 나와서 몰랐는데, 새 보러 섬을 찾는 탐방객들이 이곳으로 꽤 모이는 것 같다. 저녁도 우리가 묵었던 민박 사장님 덕에 겨우 먹었다고 하니까 ‘그런 사정 있는 것 알았으면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하셨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신흥상회가 A go-to place for wildlife watchers 같이 느껴졌다.

아저씨의 ‘족제비 보러 어청도까지 왔냐’는 질문에 “새도 볼 수 있으면 보고 겸사겸사요”라고 답했지만, 사실 솔직하게는 짧고 간결한 “네!”였다. 왜인진 모르겠으나, 순간적으로 우리의 족제비 관찰에 대한 열정이 조금 민망했던 것 같다. 어청도 오기 전에 고퀄의 어청도 족제비 사진이 담긴 관련 기사를 봤었는데, 마침 그 기사를 말씀하시면서 해당 기사를 쓴 베테랑 기자 분이 이곳에서 한동안 묵으면서 족제비를 관찰하고 멋진 사진을 찍으신 거라 하셨다. 내 사진은 그 퀄리티를 따라갈 수 없어 아쉽지만 그래도 이 특별한 경험이 꽤 마음에 들었다. 우리들의 전형적인 이전 여행들과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던 어청도에서의 1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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