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을 먹고 줄넘기도 하고 산책도 할 겸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이때가 밤 10시쯤이었는데, 주택가 지역이라 가끔 차들이 지나갈 때 빼고는 대단히 조용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인기척을 느끼고 급히 숨을 곳을 찾아 들어가는 여우를 두 번이나 봤다.) 최대한 만 보를 채우기 위해, 평소와는 다른 루트로 좀 더 걸었는데 조시가 앞서가던 나를 불러 세웠다. 미처 못 보고 지나쳤던 지점에서 바로 지난 생일 카드 표지 사진으로 본 고슴도치 공공도로(Hedgehog Highway)의 실물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보니까 훨씬 더 귀여웠다.
Hedgehog Highway는 한국어로는 고슴도치 공공도로쯤이 된다. 담장 바닥의 일부를 조그맣게 뚫고 그 위에 이 표지판을 설치한다. ‘왜 담장 바닥을 뚫는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이웃집과 내 집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한 담장, 철책 등의 울타리가 고슴도치의 유랑 길1을 떡하니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고슴도치를 포함해 자연 속 야생동물들의 삶에는 이런 경계가 없는데 인공 설치물로 길막 당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로 이 고슴도치 공공도로 아이디어가 탄생한 것이다.
조금 더 설명하면, 고슴도치의 현재 영문명(hedgehog; hedge + hog)이 암시하듯, 예전처럼 옆집과의 경계를 산울타리(hedge)만으로 만들면 이 귀여운 ‘산울타리’ ‘돼지’들은 산울타리를 거처/지붕, 이동통로, 먹거리 채집 장소 등으로 활용해 꽤 괜찮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새는 많은 집들이 담장의 재료로 빽빽한 나무판자, 벽돌, 산울타리+철조망 등의 조합으로 사용하다 보니, 그 일대에 사는 고슴도치는 이런 담장 앞에서 막다른 길에 부딪히거나 주택가 입구 쪽 도로변을 위험하게 횡단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슴도치는 이 Hedgehog Highway 안내판을 읽을 수 없지만, 우리가 발견한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고슴도치 친화적인 정원’을 만들기를 장려할 수 있는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영국에 거주 중이며 고슴도치 친화적인 집을 만들고 싶으신 분들은 HedgehogStreet.org 웹사이트를 참고해보시길 추천합니다. :>
- 고슴도치는 하룻밤 사이에 평균 2km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한다. 몸집은 작을지 몰라도, 고슴도치 한 마리당 필요로 하는 영역의 면적은 꽤나 넓은 것이다. 주말에 내가 집콕하는 동안 이 고슴도치는 나와 비교하면 훨씬 더 짧은 네 다리로 훨씬 더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활동성 높은 고슴도치에게 ‘길막’은 스트레스받는 상황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