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조시도 둘 다 할로윈에 대해 유난 떠는 성격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지만, 우리가 만약 할로윈을 챙기게 되면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바로 트란실바니아(Transylvania)에 코스튬을 차려입고 가보는 것! 할로윈을 트란실바니아에서 보내는 건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조시의 아이디어였지만 나도 이내 설득당해버렸다. ㅋㅋㅋ 그리고 결국 2016년 할로윈에 실행에 옮겼다. 루마니아 여행은 중부/동부 유럽을 버스+기차(+비행기)로 여행하던 여정의 일부였는데, 전체 휴가 일정 중에 단연 하이라이트였다.
가기 전 영국에서 트란실바니아 할로윈 여행 준비하기
할로윈 여행을 위한 특별한 코스튬 구하기
조시의 할로윈 의상을 위해 런던의 Shaftesbury Avenue에 있는 Angels Fancy Dress라는 샵에 들렀다. 예전부터 이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이렇게 비싼 런던 중심부에서 도대체 어떻게 장사를 하고 살아남을 수 있지?’라고 궁금해했다. 근데 그건 매우 쓸데없이 오지랖 넓은 걱정거리였다. 할로윈에 가까워져 오던 때라 가게 안에 손님들이 계속 들락날락했고, 각자 할로윈 파티에 입을 의상을 찾아 대여해갔다. 조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의 종류와 수량이 점점 줄어갔지만, 그래도 다행히 마음속에 그리던 것과 유사한 옷을 빌렸다.
오른쪽에 있는 사진이 조시가 고른 의상 착용 샷! 🙂 나의 여행 메이트 조시는 이왕 하는 거 완전 제대로 드레스업하는 것을 추구하는 편인 반면, 난 일상에서 입는 옷에서 약간의 할로윈 분위기가 드러나는 것을 원했다. 아이디어를 위해 핀터레스트에서 검색을 좀 했고, 난 무난하게 빨강 & 검정을 기본 톤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초커, 빨간 립스틱, 가짜 송곳니 등의 포인트 아이템을 장만했다. xD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에서의 할로윈
형형색색 낙엽과 첫눈을 동시에
2016년에는 10월 마지막 주에 첫눈을 보았다. 루마니아의 브란 성(Bran Castle) 근처에 예약한 숙소 체크인을 마쳤을 때,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것을 발견했다. 단풍 구경하러 산책하러 가려던 계획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눈 덕분에 빨갛고 노란 잎들 위로 하얀 싸라기눈이 얹어진 풍경으로 환영식을 받았다. 🙂 이런 계절의 변화는 우리가 브란에 있는 동안 특별한 분위기와 경치를 주었고, 어쩌면 그래서 이 여행 동안 더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다.
브란 성(Bran Castle)
많은 할로윈 축제와 행사들에는 뱀파이어가 등장해왔기 때문에, 할로윈 날에는 Bram Stoker의 드라큘라의 집으로 불리는 곳을 찾아가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브란 성과 Bram Stoker의 드라큘라 간의 연결고리가 사실로 증명된 것은 없지만, 사람들은 브란 성을 흔히 드라큘라 성이라고 하고, 또 브란 성 역시 그걸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우리도 그 많은 관광객에 포함된 것이고….
의상까지 준비해온 것이 빛을 발할 날이 왔다. 바로바로 할로윈 당일! 런던에서부터 바리바리 챙겨온 의상으로 각자 갈아입고 브란 성으로 향했다. 내 의상은 ‘코스튬’이라고 말하기엔 평범했지만, 그래도 드라큘라 성에 가니 뭔가 장소에 되게 잘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이날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난 가짜 송곳니 두 개를 각각 위쪽 앞니의 옆옆에다가 끼웠는데, 음…… 재밌었다. 침 안 흘리고 제대로 된 발음으로 말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과적으로 절대로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ㅋㅋㅋㅋㅋ (그래도 나름 추억이다!) 아래 사진을 찍은 곳은 브란 성에서 제일 유명한 포토 스팟이라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니 혹시 여기서 사진을 좀 여유 있게 찍고 싶다면 오후 늦게나 폐장 시간에 가까워질 때쯤까지 뻗대기를 추천한다).
브란 성 안에서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동안, Bram Stoker의 great nephew인 Dacre Stoker를 운 좋게 봤다. 아마 에어비앤비에서 할로윈 때 맞춰 했던 이벤트와 관련해서 거기 있었던 것 같다. Night at Dracula’s Castle in Transylvania라는 특별 숙박 이벤트였다.
이 여행의 목적을 최대한 달성하고 누리기 위해, 브란 성에서 가능한 한 오랫동안 머물고 나서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가는 길에 성문 밖에서 에어비엔비의 이벤트 우승자를 기다리고 있던 마차도 보았다. (마차 타고 언덕을 올라 관광객 없는 브란 성으로 들어간다니.. 부러웠다.)
브란 성 방문의 유일한 단점은 티켓 사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점이다. 참 바보 같게도, 우리랑 비슷한 생각으로 할로윈에 맞춰 여행 온 관광객이 많을 거란 점을 간과했었다. 굳이 할로윈이 아니어도 워낙 유명한 성이라 관광객은 언제나 많을 것 같긴 하지만….. 브란 성을 방문할 계획이 있는 분들은 무질서한 줄서기 풍경을 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세요.
Piatra Craiului 국립공원
할로윈 다음 날인 11월 1일,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마쳤고 브라쇼브로 돌아가기 전 시간이 남아, 브란 성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성 주변에 있던 산 쪽으로 좀 걸어갔더니, 우리가 Piatra Craiului National Park의 입구에 와 있다는 표지판을 보았다. 이 국립공원은 숨겨진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진짜 진짜.
시즌도 비수기로 들어가고 등산로도 우리나라 국립공원보다 덜 닦여 있는 편이라, 그때의 나는 이곳 등산을 약간 힘들어했다. (그렇긴 해도 큰 무리 없이 다녀올 만한 정도?) 그치만 또 한편으론, 그 벅참이 내가 무슨 오지의 탐험가가 된 것 같은 그런 효과도 주었다. ㅋㅋㅋㅋ 이 할로윈 여행에 대한 추억을 꺼낼 때마다 브란 성과 함께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이 국립공원에서의 등산이다. 오르내리면서 마주쳤던 모든 풍경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창의력 가득한 조시는 아래 사진의 풍경을 보고는, 머릿속에서 영화 반 헬싱(Van Helsing)의 특정 장면을 이 풍경에다가 그려볼 수 있다고 표현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아래 사진처럼 장관을 앞에 둔 너른 벌판이 펼쳐졌다. 난 이 풍경을 맞닥뜨렸을 때 그 밥 아저씨가 나오는 ‘The Joy of Painting’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밥 아저씨가 항상 그리기 쉽다면서 보여주던 페인팅 속의 멋진 자연 풍경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했다. 여러 아름다운 풍경 사진에서 보이듯, 이 국립공원은 카르파티아(Carpathian) 산맥의 능선을 감상하기에 최고였다. 게다가 산에서 바라본 브란 성의 전경은 보너스 뷰!
트란실바니아에서의 할로윈 여행은 좀비나 해골 분장 없이도 으스스한 날을 보내는 데 최고의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모든 순간순간이 너무 특별했고, 또 이런 여행이라면 할로윈을 매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고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여행 시기: 2016년 10월 말~11월 초
여행 루트: 런던(London) → 부다페스트(Budapest) → 브라쇼브(Brașov) → 브란(Bran)
이동 수단: 버스 / 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