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ture & Wildlife

#4. 정원에 사는 야생 고슴도치 관찰하기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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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전 일인 첫 번째, 두 번째 관찰 이야기는 여태껏 안 썼지만 일단 적어 보는 야생 고슴도치 관찰 그 세 번째 일기!

조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 정원에는 야생 고슴도치가 사는데, 지금은 이 고슴도치의 동면 준비가 한창인 때다. 타이밍 좋게도 며칠 전에 세인즈버리에서 주문한 계란 팩 중 깨진 달걀이 있어서 다가올 겨울 따뜻하게 잘 버티라고 야생 고슴도치에게 완숙 계란을 주기로 했다. 깨진 달걀 2개를 다 삶았지만, 조만간 한 번 더 보러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날은 한 개만 챙겨서 먹기 좋게 잘랐다.

야생 고슴도치를 위해 삶은 계란 - 세희의 영국 일기장 - Sehee in the World

지난번의 경험을 토대로, 이번엔 저번이랑 같은 장소에 계란을 두되 우리는 수풀 뒤 벤치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실내에서 기다리긴 어려워서 지난번 숲에서 야생 오소리 관찰할 때처럼…

이젠 저녁이 되면 추워져서 패딩을 포함해서 통실통실하게 세 겹으로 옷 입고 담요만 한 목도리랑 손 토시도 챙기고, 보온 잘 되는 텀블러에 식후 홍차까지 넣어 준비를 마쳤다. 조시랑 두 분 집에 도착하고 바로 정원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Bird bath 양옆 방향으로 준비해 온 계란을 흩뿌렸다. 의자에 앉은 다음에 시간 체크를 하니 9시 2분. 이제부터 엉덩이 싸움이다. ㅋㅋㅋ

이웃집 정원에 인공 연못이 있는데, 그 물 흐르는 소리 때문에 야생동물 움직임을 알아차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물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등을 걸러내고 온갖 소리에 집중해서 한 삼십 분 정도를 기다렸다. 중간중간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확신이 없던 차에, 조금 더 큰 소리가 반대쪽 이웃집 덤불 울타리 쪽에서 들려왔고 심지어 소리 위치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바스락바스락+킁킁 소리를 내는 이 움직이는 무언가는 과연 고슴도치일 것인가!!’ 기대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조시랑 나는 벤치에 앉은 상태에서 몸만 앞으로 최대한 숙여서 마지막으로 소리가 들렸던 쪽을 쳐다봤다. 덤불 속에서 부스럭대던 소리는 멈췄지만, 조금 더 가벼운 사각사각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조시가 가져온 red light 헤드 토치로 그쪽을 조심스럽게 비춰보니 사랑스러운 야생 고슴도치 한 마리가

‘두둥’

충분히 어두웠다 생각했고, 발소리도 최대한 안 내고 움직여서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조심히 빠릿빠릿하게 행동하면 사진도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기대하고 희망했다.) 무엇보다 이런 어둑어둑한 환경에 고슴도치가 시력이 많이 안 좋아 내 형체가 안 들킬 거라고 생각했다. ㅎㅎㅎ 나는 멍청이….. 내 존재를 알아챈 고슴도치가 ‘짧은 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꽤나 긴’ 네 다리로 후다다다닥 움직이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ㅠㅜ

고슴도치는 하룻밤에 평균 2km 정도 돌아다닌다는 글을 읽었을 때 ‘그 짧은 다리로 그렇게나 돌아다닌다고?’ 하며, 귀엽지만 딱히 믿기진 않았다. 근데 이 고슴도치의 호다다다 스킬을 보고 깨달았다. 2km 따위 충분히 가능하다고. 심지어 이보다 더 장거리를 할 수 있지만, 체력 낭비하기 싫어서 굳이 더 안 돌아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ㅋㅋㅋ…

정원에 야생 고슴도치가 나타났던 장소 근처에 삶은 계란을 뿌려줬다 - 세희의 영국 일기장 - Sehee in the World

다시 자리로 돌아와 성급했던 나를 반성하며 그 뒤로 30분 정도 더 앉아서, 더 조용히, 기다려 보았지만, 고슴도치에게 시간이 좀 더 필요했던 것 같다. 10시가 조금 넘었을 때 갑자기 으슬으슬 춥게 느껴져서 겸사겸사 일어나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에 떠나면서 계란을 놔뒀던 자리를 찍어보았다. 핸드폰 카메라에 자동 플래시 기능을 켜놓고 찍어서 화질은 별로지만, 고슴도치가 계란 줍줍하고 물 마시는 장면을 상상해보려고 ㅜㅜ♥ 고슴도치를 못 봤다면 계란을 다시 치워놓고 가려고 했는데 한 마리를 확실히 봤고, 우리를 경계해서 숨어있는 걸 알았기 때문에 있던 대로 두고 왔다. 이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은신하고 있었을 텐데 우리가 떠나고 나서 맛있는 목요일 밤을 보냈길 바란다.

다음 날 아침에 조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댁에 전화해서 여쭤보니, 계란은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사라졌다고 알려주셨다. (“It wasn’t us so it must be some form of wildlife!” 라구 ㅎㅎㅎ)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수가 없으니 고슴도치가 계란을 먹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심증으로는 같은 애가 돌아와서 먹은 것 같다. :’) 만약에 고슴도치가 아니라면 아마 여우…?

2020년 10월 15일 저녁 관찰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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